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의 자질 및 치러야 할 대가 부분과 이를 통해 제자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실, 내가 리더로서 또 다른 제자를 만든다는 부분은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제자가 되려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훈련시키는 것도 포함하고 있으며, 리더 입장에서 내가 제자로서 가져야 하는 자질도 알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란 우리들 각자 하나하나가 내부적으로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본인 스스로 제자의 모범이 되셨다. 사람들이 주님의 삶을 엿보았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도 엿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울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 9:27)‘과 말한 바 같이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심지어 그 대단한 바울도 타인에게 말씀을 전파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부적격하지 않을까 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케 하는 정도이니 나는 말해 무엇하랴는 생각이 든다
***전망이란 어떤 것을 현재 있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결과를 바라보며 현재의 결정을 내리라고 권고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속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 2:13)’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는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9. 제자를 훈련시키는 방법-확신과 전망] 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12. 생의 목표 설정]에서
전도의 원리 : (작은 부탁을 통해 기회를 포착) 우리는 본성적으로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풀기를 즐겨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은 스스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5. 전도와 제자]에서 ***
그러나, 나는 너무나 많이 나의 본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나의 직업이, 가족이, 친구가 무엇이든 간에 이것 자체가 생의 목표가 될 수 없는데도 이것이 나의 전부인냥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바울은 경제적 필요를 위해 천막 짓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의 목표는 로마에서 가장 큰 천막 공장 경영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람들을 낚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직업에 인생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직업을 통해 생활비와 십일조를 낼 돈을 얻을 수 있고, 또한 명예를 얻을 수 있으며, 친구를 얻을 수도 있다. 지금 나의 삶을 그려 보라면 직업이 중심이고 하나님의 일이 여기에서 뻗쳐나오는 하나의 가지로 묘사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이 중심이고 직업이 하나의 수단으로 해야된다는 방향 전환이 말처럼 쉬워 보이질 않는다.
나의 비전은 직장내 사역이며 개인주의로 뭉친 나같은 사람들에 대한 전도이다. 직장내 사역이라고 하면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나의 행동으로 본을 보일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너무 안일한 발상이 아닌가도 싶다. 그 말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해 힘쓰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으니 알아서 보고 배우란 얘기인 것이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딱 나에게서 나온 생각과 말이다. 무슨 말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든지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나의 말이든지 그 기저에 깔린 동기 및 목적을 살피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일예로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인자를 두려워하느냐’(이사야 51:12)라는 말은 내가 인생에서 좌절할 때 위로가 되어주지만 나는 이 말을 곧 사라질 인생에 최선을 다할 필요 없다는 것으로 이용하고 있는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나의 비전에 대해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행할 필요성이 보인다.
***증거가 사람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사람의 보잘 것 없는 노력이라도 성령께서 준비된 사람에게로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8.제자를 훈련시키는 방법 - 기본적인 삶의 형성]에서***
또한, 일을 하다보고 그에 빠지게 되면,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 드러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번에 영어캠프를 위해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이 캠프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억 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쳐야 하고 지속적으로 십자가를 져야 할 부분이 이 부분이다. 내가 기도하기보다 왜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이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가에 대해 살펴보면, 지식은 여러모로 활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내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케해주고 또한 알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줌으로써 내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나를 주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약점을 나의 은사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자신이 바로 서지 않았는데 감히 누구를 가르치며 누구에게 복음을 전파하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 욕심인 듯하다.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 나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두려움, 또는 공격받거나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선뜻 나서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을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쨌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일이고 나머지는 주님께서 모세를 쓰고자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완화시켜 주님을 영접하거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옥토밭으로 만들어주시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5~6)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누 9:23)
[6. 제자 후보생의 징모]에서***
다른 하나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할 부분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책망하지 않거나 명백한 잘못앞에서는 자비(또는 gentle instruction)가 없다는 것이다. ‘너나 잘하지’ 또는 ‘나의 티끌만 보이고 너의 눈에 들어 있는 대들보는 안보이냐?’하는 비난 및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 덮어두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착하지 않은데도 착하다고 말하는 거짓된 입술보다 그 사람의 선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온유한 가르침에 대한 기술이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농활, 수련회, 주일 말씀, 제자훈련 등을 통해 너무나 좋은 말씀을 넘치도록 받았다. 그러나, 알고는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전혀 실행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하루에 한 가지 선한일 하기와 같은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점검해가고 회개하고 바라면서, 40년을 기다린 갈렙과 같은 인내가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