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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7일 목요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 고든 맥도날드

[책 속에서]
2. 폭풍은 찾아온다.
인간이 설명, 안정에의 원조, 의미 그리고 진실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면 아래쪽을 보아야할 때 깨지는 순간은 찾아온다.

3. 폭풍, 그리고 깨어지는 순간
우리는 깨어지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고통과 불편, 실패와 굴욕을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유일한 것은 바로 고난이다. 훈련이란 자신의 삶 속에서 일부러 고통과 긴장을 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에서 훈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인생에 무질서와 게으름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음을 수긍한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영혼과 접촉하려는 자는 근면하고 단호해야한다고 주의를 준다. 우리는 여러가지 감정, 피로, 산만한 마음, 잘못된 욕망, 세간의 의견을 극복해야 한다.

5. 영성을 찾아서
어느 은밀한 곳에서 하루에 30분만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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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고 안정된 삶에서 가치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는 참 힘들다. 돌아보면, 어려움과 불평, 불만속에서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 등에 대해 치열히 고민했었다. 그러나 한 번 튕기다 돌아오는 고무줄처럼 안정되고 나면 다시 그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가올 위험/어려움을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은 채 니나노♬♬하며 살아간다. 삶이 오르락 내리락하는거야 어쩔수 없다지만, 나는 어려움속에서 성장을 했는가? 아니면 회피를 했는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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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속에서 나는 포기를 하며 그래서 다른 방향 이를테면 다른 직장, 다른 사람, 다른 교회 등을 추구한적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이전의 실수 투성이의 또는 죄악된 모습들이 사라지고 흠없는 새로운 사람처럼 보여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즉 습성, 또는 정신이 바뀌지 않으면서 나는 똑같은 패턴을 답습하면서 그때마다 기존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서 pretend to be nice 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어려움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피하고 포기해버린 것의 결과들이다. 이러한 폐해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어쩌지 못한적이 지금도 많지 않은가?

요즘들어 일어나는 한 예로, 나는 현재 업무적인 면에서 어렵게 느꼈던 한 과업을 무사히 마치고 그 보다 더 높은 달성도를 요구하는 작업을 진행중인 상태이다. 마음속에서는 '내일하지' 또는 '웹써핑 좀 하고 나서 하지뭐', 또는 '왜 이렇게 책상이 지저분한거야. 책상 좀 치우고 하자', '왜 하필 나만 이런 어려운 일이 주어지는 거야', 등등의 회피용 멘트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마음한편에는 이러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전처럼 포기해버리는거 아냐?라는 우려도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것이다(For I have the desire to do what is good, but I cannot carry it out For what I do is not the good I want to do; no, the evil I do not want to do--this I keep on doing). 따라서 그가 말한대로 with God and through Jesus 를 통해 내가 극복할 수 있으리란 희망의 씨앗이, 비록 그것이 겨자씨만한 것일지라도 내안에 있음을 안다.
다시 요즘에 맡고 있는 업무의 예로 돌아가자면, 이러한 나를 알기에 하루의 시작시, 해야될 일의 달성율을 설정해놓고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면서 해나간다. 일을 무사히 달성했을 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 이 일의 달성에 이끌었다'라고도 고백해 보고 싶지만 무지한 나는 현재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렇다면 일의 시작 또는 진행 시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한 교제 등이 어떤 효과가 있을까? 곰곰 살펴봤을 때 아마도 일을 진행하면서의 '안정' 또는 '확신'감을 주는 면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나와 같이 어려움/스트레스로 인해 하나님을 구하는 동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안정되고 편안하면 하나님을 찾고 교제하는 시간이 많을 듯 한데 실상은 반대이다. 오히려 더더욱 안주하고 그러한 편안한 삶을 만끽하느라 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지 않은가. 풍족하고 안락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래서 부족함 자체가 복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그리고 교제하는 것이 복이리라. 그러한 참된 복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혹은 꿈꾸지 않는 사람은 그것에 대한 기대감/소망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세상에서 주는 돈/명예 등이 주어졌을 때여야만 축복을 받은것이라 생각하고 그것만 추구하리라.

결국,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 주님의 임재 자각 및 교제를 통해서일것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우리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 재물, 명예와 같은 '복'이라는 개념과 다르다. 지금은 추상적이고 아득하게만 느껴질지라도 그러한 것을 소망해본다.


1.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일시적으로 소유하는 재물/명예 등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과의 교제를 통한 참된 축복을 바라는 마음을 원하도록 저를 인도하소서.
2. 아버지, 제가 일 중심이 아니라 주님이 목숨을 내어주신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는 people person 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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