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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2일 금요일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 김선주

[책 속에서]
교회 - 이념의 성전
이렇게 볼 때 한국 교회에 복음의 진정성이 살아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 때 신사 참배한 죄, 해방 이후 이념 대립 과정에서 잔혹한 학살극에 가담한 죄, 수많은 시민을 탄압하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독재 권력에 빌붙어 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죄, 기독 정당의 명분으로 세속적 명리와 권력을 탐한 죄 등 이러한 교회의 죄악상은 묻어둔 채 신도들을 향해 회개를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집단적 범죄를 은폐하기 좋은 장치가 바로 개인주의다. 한국교회는 모든 신앙의 형태를 개별화시켜 집단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갖는다. 개인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지만 신앙은 각자의 몫으로 전가하여 교회라는 집단의 도덕성과 무관한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교회라는 집단의 도덕성이 구성원 개별자의 신앙과 무관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설교 - 소비되는 권위
하느님과 신도의 소통과 화해를 통해 하느님을 존중하고 높여 드리는 것이 예배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예배 과정에 이루어지는 모든 의식은 하나의 절차나 수단에 불과하다. 설교 역시 이러한 목적에 봉사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예배 대부분이 설교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예배의 절차와 과정이 설교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모든 절차가 설교를 위한 부속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예배 구조는 예배자의 주체적인 참여를 방해하고 설교자와 청중을 이원화시킨다. 따라서 청자는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게 된다. 교회와 예배의 모든 권위가 설교자와 설교에 집중됨으로써 예배자들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설교자도 예배자의 한 사람일 뿐이다. 이것을 망각하면 제사장 이데올로기가 부활하게 된다. 강단의 설교가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의 향연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복음 - 유니폼 크리스천의 액세서리
한국 교회는 순종을 명분으로 하는 굴종과, 성경적 권위를 가장한 목회자 권력이 성경의 진리를 제멋대로 요리하는 싸구려 음식점으로 전락한 것이다.
전도 - 제국주의자의 타자화 전략
그 한 번을 위해 전도자들은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전도자는 인격적 모멸감 속에서도 하늘나라의 상급을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전도자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 피전도자는 기독교와 복음에 환멸을 느낀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했다는 맘으로 편안히 잠들 때 피전도자는 기독교와 복음에 대해 스트레스 받고 피로감에 젖는다.
한국 교회는 복음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해석으로 교회를 플라톤의 신전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영과 육은 절대 분리된 것이며, 선고 악이 영혼과 육체로 극명하게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성 - 싸구려 유행 상품
감성의 과잉을 영성으로 착각하여 그것에 충실하는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 경계했던 이교적 제의 현상이다. 이러한 경향은 극단적 감정의 표출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지향했던 고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열광주의를 부추긴다.
쉽게 반성하고 또다시 쉽게 범죄하는 싸구려 감상주의식 회개가 한국 교회와 신도들에게 만성화됐다는 것을 반증한다.
성경은 여러 단계를 거쳐 재구성되고 번역된 텍스트다. 그런데 토씨 하나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성경을 샤면의 주술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문자에 어떤 영험한 능력이 있어 그것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성경과 기독교를 저급한 샤머니즘과 마술성에 빠뜨리는 것이다.
채찍으로 갈기며 상을 뒤집는가 하면, 입에서 악한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이 개자시들아'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행위는 과격하기 때문에 영적이지 못한가. 예수님 답지 못한 폭력 행위인가? 그렇지 않다. '영적'이라거나 '영성'이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양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진실성에 있다. 그 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거룩한 분노를 죄악으로 여긴다.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거나, 본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설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주입 받는다. 정직하고 올바른 태도로 교회와 목회자의 부조리에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거짓된 자아를 죽이는 것, 그것도 하나의 순교다.
헌금 - 윤리를 망각한 영혼의 환각
인간의 나약한 심리가 율법적 강제에 포획될 때 헌금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두려움과 공포심에 의한 반사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제물(헌금)을 발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하등 종교의 신(神) 관념이 한국 교회에 침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존자 하느님은 인간에게 제물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복이나 저주를 선택하여 내리는 저급한 잡신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한국 교회는 헌금을 먹고사는 저급한 잡신의 소굴, 아니면 몰렉의 신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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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했다. 이러한 소수자에 대한 인권 등은 사실 거의 무관심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란 말을 들어도, ‘지네들만 특별하냐, 왜 튀려고 하느냐. 누군 몰라서 그렇게 안하느냐, 국가를 위해 개인의 이익은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이런 식의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즉,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군대는 당연한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을 선택하는 대신 감옥을 선택한 여호와 증인에 대해서 이단의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일년에 수백명의 젊은이가 감옥에 들어가는데도 그것이 인권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국가의 제도와 개인의 주권은 역사 이래 계속 싸워왔으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와서는 국가 체제나 이념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우선시 되는 쪽으로 방향이 설정되고 있다. 그래서 서구의 많은 국가가 징병제 대신 모병제로 바꾸거나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대체복무제가 무기한 보류되었다는 사실은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이념이 중시되는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정말 징병제 밖에 방법이 없는 것일까? 군대를 갔다 온다고 해서, 총이나 제대로 쏠 사람이 있을 것이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들을 활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만한 돈이라면 모병제를 하고 그 나머지로 최첨단 장비 및 기술 개발에 투입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란 정치적 용어 아래 효율성을 따져 보지도 않고 우리는 쉽게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지나 않은가?

예수님이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말씀한 바와 같이 '국가주의'는 명백히 신앙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주의는 하나님이 바라는 것에 반대되는 이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악한 자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전쟁을 통해서 공공연히 합법적 살인을 하도록 조장하는 국가주의는 개인의 인권차원을 떠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말을 한다. "기독교는 국가와 합치될 수 없을 뿐더러 어떠한 형태의 체제나 이념에 복무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아니키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 한기총이 반대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극렬히 반대한 이유도 납득할 만하다. 결국 대체복무제를 찬성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를 인정해주는 꼴이 되는 것이고 국가와 제도를 초월한 정의에 대한 담론의 주도권이 여호와의 증인에 넘어감으로써 담론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기 때문인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라고 나는 세뇌 당한 듯하다. 물론 특정부분은 이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예수님이 지향하는 것과 반대된다는 점에서 볼 때 어쩌면 군대거부라는 면에서는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slightly 든다.

요즘의 시국선언을 보자. 각 학계, 종교계(불교), 심지어 외국 대학에 있는 한국인 및 외국인 교수까지 현 사태를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보며 시국선언을 줄이어 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 한국교회 원로들은 이제야 겨우 시국선언을 할뿐더러,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소수의 시국선언을 통해 국가에 혼란을 조장하지 말고 국민적 화합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 하며, 대한민국 정체성과 법질서를 수호해야한다는 성명서를 내는 형편이다.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그룹이 용산참사 등 약자, 소수를 위한 대변이 필요할 때에는 조용히 있다가 대체복무제나 시국선언 등 기득권자 및 권력을 옹호하는 것에는 적극적인 또한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을 통해 다수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말씀에 비추어 옳다면 지금까지 고집해왔던 것을 버리고 그것을 채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 맹목적으로 생각 없이 다수를 좇았던 나를 반성한다.

농산물 관련 펀드

농산물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 일반 주식형 펀드
- 도이치DWS프리미어 에그리 비지니스 펀드 : 식품 곡물, 종자, 비료 생산회사에 투자
- 농산물 가격 상승 → 해당기업 수익 개선 → 주가 상승의 구도
- 농산물 가격과 증시 상승을 예상하고 장기투자시 유리

**도이치DWS프리미어 에그리 비지니스 펀드
- 세계2위 곡물종합상사인 미국 ADM등 전세계 농축수산물 생산/가공/유통 대표 기업에 직접 투자

- 여러기업에 분산투자하다보니 곡물 지수 급등분이 펀드 수익률에 고스란히 반영되지는 않음.

**글로벌코어애그리주식투자신탁
- 세계 2~3위 곡물 메이저업체 등 16개 국가 곡물생산업체에 직접투자
- 농업 전문 자산 운용사인 네델란드계 로베코(Robeco)자산 운용사와 공동 운영



농산물 관련 인덱스에 투자하는 펀드
- 선물지수 추종하는 파생상품 펀드와 ELF펀드
- ‘미래에셋맵스로저스농산물지수종류형펀드’와 ‘산은짐로저스애그리인덱스펀드’
- 농산물 선물의 근월물을 매수한 뒤 만기 전 매도하는 반복적인 롤 오버(Roll-over) 방식을 통해 운용
- 단기간 농산물펀드의 상승에 따른 성과를 맛보고 싶다면 지수 추종 파생상품펀드, 특정 기간 안정적인 성과를 기대한다면 ELF형 펀드 유리

**미래에셋맵스로저스농산물지수종류형펀드
- 옥수수, 밀 등 20개 곡물상품을 기초로 만든 '로저스인터내셔널 농업 상품지수'를 쫓아가는 인덱스 펀드


***클래스 A, C : 장기간 투자시 A, 단기간 투자시 C 선택


*2011.2월 주요 국제곡물 가격 추이
-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피해에 따른 곡물 가격 폭등 장기화 가능성
- 국제곡물가격은 6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물가 반영 => 본격적으로 밀가루, 식용유, 당 등 식품가격 인상 큰 폭

2009년 6월 5일 금요일

전세 계약 시 체크 및 유의사항

<주택방문체크>
① 누수
② 수압
③ 욕실 변기막힘
④ 싱크대배수
⑤ 방문,창문파손 여부
⑥ 도배,장판상태
⑦ 전기배선
⑧ 보일러 작동이상유무
⑨ 관리비.공과금체크
⑩ 일조,조망,환경,교통,주차문제체크
⑪ 기타 균영,곰팡이등여부 체크
<계약시>
임대권한이 있는지(소유권자 및 대리인)와 계약을 하되 등기부상 본인명의인지 여부를 주민등록증으로 확인
대리인이 나올 경우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확인
① 임차주택의 사용부분을 계약서상에 정확히 표시
② 계약금,잔금의 금액,지급일정과 임대차기간 명시
③ 임대료 지급방법 표시
④ 전임차인의 퇴거일과 입주일 확인
⑤ 전임차인의 관리비 등 제세공과금 처리
⑥ 시설상태 및 수리여부 확인
⑦ 구조변경 및 원상회복문제 확인
⑧ 위약 및 계약해제 사항 확인
⑨ 특약사항란은 구체적으로 기입
⑩ 중개수수료 지불문제 확인
⑪ 중개대상확인·설명서 작성 및 교부
* 요구사항,제시사항은 특약으로 명시.
**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가등기, 압류, 가압류, 가처분 등 권리관계를 철저히 확인해 이 같은 내용이 있으면 계약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주택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 주택가격에서 선순위 근저당금액을 뺀금액이 전세금보다 많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 값이 폭락할 경우나, 경매낙찰가액이 주택값보다 턱없이 적을 경우엔 선순위 근저당금액을 제하고 전세보증금을 보전받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100% 안심할 수 없다.
주택매매가격 - 선순위 근저당금액 > 전세금 => OK
<전입신고 하기>
<확정일자 받기>
확정일자란 공증인이나 법원 공무원, 동사무소 공무원이 사문서에 기입하는 일자인(印)을 말한다. 그 기입된 일자 현재 해당 문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세계약서에 받는 확정일자는 청구자의 성명과 문서명을 확정일자부에 기입하고 확정일자부의 번호를 계약서에 쓴 후, 확정일자인을 찍고 그 안에 청구한 날의 일자를 기재하는 순서이다. 임대인의 동의없이 임차인 혼자 청구할 수 있으며 전세계약서를 공증받았을 경우는 이미 확정일자를 갖춘 것으로 간주돼 별도로 청구할 필요가 없다. 또 반드시 임차인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계약서를 소지한 사람이면 누구나 대신 받을 수 있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기도의 전성기를 경험하라 - 이인호

[책 속에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게으름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처럼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 1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포시스는 "기도할 하나님께 말하거나 대화하는 것, 즉 다정한 어조로 대화하며 하나님과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말라. 우리는 기도를 영혼의 위대한 행동이기보다 대화로 만들려고 한다. 안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두 팔에 자신을 던질 분 아니라 그와 겨루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 그는 그런 거룩한 전쟁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 2부. 응답받는 기도에는 법칙이 있다.


오늘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사람들의 악함에 분노하는 사람이나 사람들의 불순종과 연약함을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악함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고난을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에게 고통이 많은가? 지금 질병을 앓고 잇으며 파산과 실직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그 아픔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하신다. 당신의 고난과 상처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는 치유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 4부. 기도의 하이라이트, 세상을 통치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오늘날 정말 안타까운 현상이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처음에는 니느웨 사람 같고 죄인과 세리 같고 둘째 아들 같은 상황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아 교회의 성도가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요나처럼 되어가고, 바리새인처럼 되어가고, 맏아들처럼 되어서 교회안에 죄인들과 연약한 자들을 정죄하고 그들에 대해서 엄격해진다. 교회를 다닌지 한 30년쯤 되면 눈이 서치라이트가 되어서 죄를 적발해내는 데 전문가가 된다. 보통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이 무서운 이유다. 목사님들도 점점 무서워진다. 원래 신앙이 장성할수록 예수님을 닮고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바리새인을 닮아간다.
- 4부. 기도의 하이라이트, 세상을 통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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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에게 기도는 부담감이다. 많이 발전한거다. 이전에는 '선택' 이거나 또는 해야되는 것은 알지만 바빠서, 피곤할 경우,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피곤하지만,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스레라도 해야하는 것이 되었다. 중보기도의 능력이라 생각된다. 나의 이러한 경건생활의 문제점을 오픈하고 여러사람에게 중보를 요청한 것이다. 그들이 기도를 열심히 해서인가 보다.


기도에 대한 내용도 slightly 바뀌고 그리고 앞으로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중심, 그리고 내 가족 중심의 복을 바라는 기도였다면, 지금은 사회가 사회인지라 이 사회에 대한 기도, 이 나라에 대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안나와 시므온은 메시아가 오시길 바라며 몇십년동안 기도를 해왔다. 우리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무엇에 대해 기도를 해야할까?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지경을 넓혀서 새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임하도록 이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하지않을까?


천국은 죽음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즉, 기독교는 죽음 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의 이면에는 영과 육이 분리되고 선과 악이 영혼과 육체로 분리된다는 플라톤의 이분법적 사고가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한국 교회의 일곱가지 죄악 中에서) 그러나, 주님이 약속하신 천국,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것은 죽음 후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새하늘과 새땅을 이땅에 만드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는 개인차원뿐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를 위해서 기도해야하지 않겠는가?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님을 supporter로 두고 기도와 함께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action을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최근의 생각이다.


그러나 1년전에도 주제는 달랐지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 '아닌것이 아니라는 체념에서 벗어나 아닌것을 올바로 고치는 길에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나는 그런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나는 뒤에서 박수나 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서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미세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뒤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고 갈 수 있도록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지경을 넓히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 그리고 주님이 바꾸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감정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하지 말고, 나의 관심사, 할 수 있는 여건, 등을 고려해 그 다음단계, action plan을 생각해 보자.


[플라톤의 사상]
ㅇ 플라톤의 사상 : 이데아=본질, 윤리, 고정적인 것 <=> 현상=운동하고 변하는 것 ==> 존재론적으로 이 우주를 설명함
ㅇ a certain 기독교 사상 : 영혼=불멸 <=> 육체=죄 ==> 세상은(몸) 일시적인 것이고 불멸의 영혼 추구
ㅇ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상은 역시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고에(영혼은 불멸하고 죽음후에 천국으로 영혼만 가고 육체는는 죄성이 있으며 일시적임) 영향을 줌. 새하늘과 새땅은 이 세상에 이루어짐을 일원론적으로 생각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