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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30일 목요일

('09.7.24~26) 홍도


[소나무, 절벽 곳곳에 보이는 소나무]




[뽀뽀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 한쪽에서 쳐다보고 있는 본부인?]

[유람선을 타면은 기다리고 있는 배가 있다. 거기서 막잡은 회를 떠서 판다. 광어회 28,000원, 홍도 식당에서는 60,000원, 싸닷! 소주도 같이 판닷!]


[앗차, 하면 떨어질 것 같아서 아차바위]


[해파리]

[유람선,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많이 불어 춥다. 여행갈 땐 반드시 긴팔은 필수!]




홍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치 대관령 목장같은 언덕이 펼쳐진것이 보인다. 그 언덕을 왕복 40분 정도 올라가면 홍도 1지구?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약 500가구 정도가 산다고 그랬나. 가장 넓게 보이는 땅이 초등학교이다.


모텔에는 귀여운 TV도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호한 시설이다. 비록 따뜻한 물은 맘껏 쓸수는 없었지만... TV가 있고 드라이기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다른 놀라운 것은 홍도에는 나이트 클럽이 있다는 사실이닷~ 가보진 않았지만, 도시에선 클럽 앞을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던 나이트 삐끼가 놀다가라고 쫓아왔다는 것이다. ㅎㅎㅎ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개들] [오호라, 나이트로소이다]



[모텔방, 귀여운 TV]

[모텔방에서 양말 자국난 피곤한 발] [회를 먹고 바닷가에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하고 있는 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한쪽에선 가족끼리 놀러왔는지 그래도 좀 추운데 해수욕도 하고 미역도 따면서 즐거워 보이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리고 여객선들을 보면서,,도란 도란,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열받은 일이 있었단 말야?"

"많이 힘들었겠다."

"다른 친구들은 뭘 할까?"

"결혼은 해야하는 걸까?"


"비가 안와서 다행이다. "

"왜, 대다수의 보스들은 사악할까?"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자."


저물어 가는 해 그늘 아래, 반짝이는 바다물과 함께 그냥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09.7.24~26) 흑산도



흑산도다. 배에서 내리면 흑산도의 명물인 홍어 모양의 돌이 우리를 반긴다. 오징어를 말려 놓는 모습도 보이고.
흑산도에서 상라리고개를 가보고 싶었다. 구불구불 열두고비 고개길로 유명하단다. 부두가에 내려서 걸어가면 왕복 3시간 정도는 걸릴 거란다. 어디보자. 버스는 15분 만에 가지만 버스가 4시간마다 온다고 하니 포기할 수 밖에~~


대개 흑산도에는 두종류의 관광이 있는데, 하나는 유람선을 타면서 섬 주변을 도는 해상관광이고 두번째는 버스로 흑산도 내부를 도는 육상관광이다. 이미 홍도에서 유람선을 타며 해상관광을 충분히 멀미나게 즐겨서 해상관광은 하지 않았다. 물론 버스로 찍고 찍고 찍는 것이 싫어서 이번에는 비록 걸어서 갈 수 있는 시간 및 명소도 충분치 않았지만 wandering을 택했다. 그 중에 갈만한 곳이, 초장골 전시관(성당), 흑산비치 호텔(전망 좋은 곳임), 상라리 고개 정도 였다







초장골 전시관, 천주교 성당을 가는 길에 중학교 운동장을 지나게 되었다. 185 km 둘레의 이 조그만 섬의 중학교는 어떤 곳일까? 학생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교사는 충분할까?
비온 뒤라 그런지, 어제밤에 어떠한 동물이 이리 발자국을 찍어 놓았을까?





성당을 오르는 길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조그만 statue들이 늘어서 있다. 그러한 stature 를 발 아래 두면서 예수님이 두 팔을 벌려 이 섬을 포옹하는 듯한 또는 선포하는 듯한 모습이 있다. 흑산도 거주민 중, 당시 신유박해로 유배당했던 정약전(1758~1816)이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단다. 정약전은 한국어 성가의 가사도 만들었다고 한다. 1958년에 흑산도 성당이 설립되었다고 하니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온 성당의 세월을 볼 수 있으리라.





요즘은 교회도 성당도 모두 거대하다. 건물은 웅장하고 조명은 화려하며 구조는 세련됨이 있다. 프랑스, 영국 같은 외국을 가더라도 단지 오래되었다 뿐이지 웅장하고 거대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한 속에서 장엄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작고 소박하고 아무나 거리낌없이 들어와 묵상할 수 있도록 오픈된 이 흑산도 성당은 작고 풀뿌리같은 우리네 삶과 닮아 있고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지친 나에게 쉼을 준다. 다정다감함을 준다.




부두가 근처에는 관광을 갔다온 사람들을 끌기 위한 자그만 리어카가 늘어져 있다. 그마저도 없다면 강렬한 햇빛을 가릴만한 커다란 우산도 없이 쪼그려 앉아 미역이니, 오징어니 파는 아줌니, 할무이 들이 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신 우리네 어머니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네들, 우리는 그것을 알까?

('09.7.24~26) 비금도 도초도

비금-도초도 라고 한다. 비금면과 도초면은 다리로 연결된다.
2005년까지인가 인구가 15,000명정도 된 것이 지금 현재는 약 7-8,000명 정도 밖에 안된단다.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많지 않다. 스위스의 조그만 마을들이나 될까.
약 300~400m 정도의 낮은 산들 밑에 있는 마을, 농사와 염전을 주로 하는 그네들,
등산을 하더라도 울창한 삼림으로 인해 산만 보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등산을 하면서 쭉뻗은 비치, 지평선, 바다를 볼 수 있어 등산가들이 종종 찾아온단다. 물론 해풍으로 인해 울창히 자라지 않는 나무들도 한 몫 기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객선 안은 마루로 되어 있고, 목포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미처 준비하지 않은 나 같은 여행객은 여름이지만 좀 추워서 구부리며 자기도 하고 깨서 책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원주민들은 다르다!. 준비해온 담요와 과자와 함께 무료한 시간을 고스톱으로 때운다.





명사십리,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무수히 들어본 곳이다. 이 좋은 곳을 자기들 끼리만 가시다니. 특히나 저녁 무렵의 beach는 시야로 보이는 조그마한 섬들 그리고 그 섬들 사이에 넓게 드리운 안개로 인해 은은하고 아름답다.

<명사십리 해수욕장>





하누넘 해수욕장 가는 길,,,,,구불 구불 길이 아름답지 않은가?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게 되면 차를 실을 수가 있어서 하누넘 해수욕장 가는 길을 멋지게 드라이브 하면서 갈 수 있다. 정말 이름 그대로 하트 모양의 해수욕장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장마기간이라 그러한지 사람들이 찾지를 않아 부산함이 아닌 한가한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가을이나 겨울에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

<하누넘 해수욕장, 하트 해수욕장>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책 속에서]
<제 1장 서기 211~218년>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도 통찰한 뒤에 생각하고 실시해야 한다. 깊은 통찰과 정반대되는 극에 있는 것이 얕은 생각이다. 카라칼라의 기동부대 상설화가 야만족의 침입을 불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야만족의 침입을 격화시킨 한 요인은 되었을 것이다.
- 왜냐하면 기동부대 자체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차지하였기 때문. 이러한 약점을 당연히 적국은 이용하지 않겠는가?
<제 2장 서기 218~235년>
인간은 사실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으면 믿어버린다.
상관의 소집명령을 무시한 행위는 충분히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일은 '이치'에만 맞는다고 이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현상으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에 즈음하여 드러나는 인간 심리는 되풀이된다. 따라서 인간 심리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력,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과 감수성,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과거에 성공했던 선례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는 가르쳐주고 있다. - 알렉산데르가 병사들의 항의에 대해 카이사르가 했던 방식대로 행했을 때...
<제2장 서기 270~284년>
실력 중시 노선이 정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실력주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동격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나한테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사려 분별이 요구되지만, 그런 합리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이른바 '귀골'에게 하층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비합리'이기 때문이다. 많은사람의 가슴에 더 순순히 들어오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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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는 성실한 타입의 황제였다. 나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옛 황제들의 정책도 열심히 본받으려했고.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가르침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데 그친 사람이었다.
알렉산데르가 가지고 있는 고지식함이 내게도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기인할 것일까 생각해보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인것을 발견했다. 그저 이전에 누군가 했던 것처럼, 상관이 지시한대로만 하면 단순/명쾌 편하다. 또한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으므로 문제가 생겼을때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 전임자, 상사의 책임이 된다.
내가 때때로 제발 생각 좀 하면서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가? 남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조곤 조곤 짚어가면서 교정하도록 또는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하지 않을까. 제발 눈 앞에 있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눈 앞에 있는 것을 기계적으로 또는 감정으로 처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후속 파장까지 고려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내가 하는 일이 1년, 5년 후 또는 후임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 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이 아니라 사람, 시민에 의해 왕위에 대한 정통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참으로 민주주의적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쉽게 다수 또는 소수에 의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은 경우는 쉽게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특히나 황제가 나약한 경우, 정국이 혼란한 시기에는 우후죽순으로 자신이 황제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국가나 보다 큰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면, 황제든, 국민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세상을 보면 악(惡)은 다수이며, 선은 희미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파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수인 '악'속에 있을지라도 국가는 유지되며 시민들은 밝은 햇살아래 살아가는 지금이 놀랍다는 생각도 잠시 든다.
어쨌든, 3세기의 로마를 보면 73년간 22명의 황제가 통치했고(평균 3년) 그들 대부분의 죽음은 암살 또는 살해이다. 그래서 13권에서 다룰 21년간의 통치를 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리고 기독교를 공인하고 30년간의 통치를 한 콘스탄티누스가 궁금하다.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 그래도 갈리아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을 회복하면서 적극적으로 야만족(고티족)을 격퇴한 아우렐리아누스 같은 인물도 있었고 그의 뜻을 이을 카루스 같은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만에 나온 그래도 괜찮은 황제들임에도 불구, 아우렐레아누스는 잘못으로 벌을 받을까 두려워한 병사의 계략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살해당하고, 카루스의 경우는 사막에서 싸울준비를 하며 야영하다 벼락 맞아 죽게된다. 국내외의 혼란에 더해 왜 확률이 낮은 일까지 로마의 황제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녕 이대로 쇠락과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