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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7일 월요일

아직도 가야할 길 - M. 스캇 펙

[책속에서]
1부 훈련
(노이로제와 성격장애)
성격장애자들이 자신들 문제에 대해 배우자, 자녀, 친구, 부모, 고용인, 환경, 학교, 정부, 인종차별주의, 남녀차별, 사회제도와 같은 외부에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는 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며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기들의 책임을 내던져 버림으로써 그들 자신은 편안할지 모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포기하고, 영적 성장이 멈추게 되고, 사회는 쓸모없는 짐만을 떠안는 꼴이 되고 만다. 결국 성격장애자들은 자기들의 고통을 사회에 던져 주는 것이다. "네가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것이다"라는 격언에 주목하라.

(포기는 부활이다)
두 장군이 자기 휘하 군인들을 전투에 나가게 할 것인지 아닌지 각각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한 장군에게는 군단이 전략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장군은, 전략의 도구라는 점도 인정하지만 각 개인의 생명을 일일이 인식하고 있고 또 각 개인의 가족의 생명까지도 일일이 인식하고 있다. 어떤 장군이 결정을 더 쉽게 할 수 있을까? 인식을 어리숙하게 하는 장군이 더 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정확히 말해서, 보다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에 따르는 고통을 견뎌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4부 은총
(엔트로피와 원죄)
"왜 우리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사는 것이 정말 좋아서 은혜를 배반하고 싶지 않은데, 이 율법만은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설명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런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율법 뒤에 숨은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직접 도전해 보려 하지도 않고, 어른답게 대화해 보지도 않고서 그냥 율법을 깨뜨렸다. 그들은 뱀의 말은 경청했지만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을 되새겨 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유혹받고 행동하게 되기까지 그들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가? 죄의 본질은 바로 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에 있다. 즉 토론의 단계를 생략해 버린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뱀과 하나님 사이에 논쟁을 붙였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쪽의 답변은 듣지 못했다. 마음 속에서 선과 악 사이의 논쟁을 붙여보려하지 않는, 혹은 힘을 다하여 싸우지 않는 그러한 태도가 바로 죄를 짓게 하는 원이이다. 바로 게으름 때문이다. 자기 내면 속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일종의 일이다. 그러므로 원죄는 존재한다.
은총이 인간의 진화라고 하는 사다리로 우리를 밀어 올리는 궁극적인 힘의 원천인 것처럼 엔트로피는 우리로 하여금 그 힘에 저항하여 지금의 편안한 사다리의 아랫단으로 내려가도록 부추긴다. 은총에의 부름은 곧 보다 더한 책임과 권력이 있는 지위로 승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부름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랑으로 세상을 돌보고 수고하는 삶에의 부름이며,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의 부름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이 상태에서 어른의 상태로 나아가라는 부름이며, 인류의 부모가 되라는 부름이다.

(은총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 망할 놈의 생각을 언제나 해야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나는 더 골치 아프게 살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란 말예요. 좀 더 긴장을 풀고 자신을 즐기면서 살고 싶단 말예요. 선생님은 제가 하나님 따위라도 되길 바라시나 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총에 저항하는 주된 이유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중 '근면하라'는 부분 때문이다.우리들 대부분은 어린이나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어른다움에 따르는 자유와 권력이 우리들의 것임을 알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자기 훈련은 별로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부모나 사회, 혹은 운명이 우리를 억압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우리의 지금 상태를 대신 책임져 줄 윗사람을 필요로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는 그런 권력의 정상에 올라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 정상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독에 질려버리고 말것이다. 자기 인생이라는 배의 고독한 선장이 되기 보다는 책임감이 없는 상태를 택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자는 많지만 선택받은 자는 적다'라는 말은 은총에의 부름에 응답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설명된다.

우리가 은총을 선택함과 동시에 은총에 의해 선택된다고 하는 역설은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다. 부처는 해탈하려는 노력을 멈추었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이 그에게 오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가 해탈을 얻기 전 적어도 16년간이나 그것을 찾아 헤매었으며 16년간이나 그것을 위해 준비해 왔기 때문에 해탈이 그에게로 왔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진화의 기적)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에너지는 언제나 보다 정돈된 상태에서 덜 정돈된 상태로, 보다 복잡한 분화 상태로부터 보다 단순한 분화 상태로 흘러간다. 일예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시내물이다. 이 과정을 거꾸로 돌려 놓으려면 펌프, 수문, 양동이로 퍼올리기와 같은 에너지나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주는 수백만 년의 세월동안 아래로 흘러내리기만 하여 마침내는 모양도 없고 질서도 없는 점액질이 되어 버려 더 이상은 어떤 운동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완전 해체와 미분화된 상태를 엔트로피라고 부른다. 진화의 흐름은 이 엔트로피의 힘과는 정반대이다. 진화의 과정은 유기체가 단순한 분자구조로부터 보다 고차적인 복합구조, 즉 분화되고 정돈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의 과정은 바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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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으로 가는 길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수고해야하는 일이다. 그러한 길은 자신의 노력(의지)과 엔트로피에 저항할 수 있는 은총 둘다 결부되어야만 갈 수 있을 거라 한다. 원죄가 게으름이라는 것은 공감이 많이 간다. 엔트로피의 힘에 따라 그리고 원죄인 게으름에 따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즉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단계 내려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단순히 가까운 예로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나의 줄거리를 짜고,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게으름, 원죄, 은총 등- 서로 연결하고, 이해한 것을 풀어쓰고, 맞는지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 생각을 하기 싫단 말이닷!
막중한 책임을 가진 자리에 앉기 보다는 만년 평사원이 속편하지 않은가!(물론 어떤 직종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파워는 세지지만 책임은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서려 기를 쓰는 곳도 있다)
성장하기를 원치 않는것이다. 주된 이유로 책임과 고독감, 그리고 끊임없는 수고란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한때 노력으로 성장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나만의 의지로서는 되지 않음을 안다. 느낀다. 이러한 본성에 거스르는 일은 은혜가 없이는 어려움을 인식한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필립 얀시

[책에서]
프롤로그: 마지막 최고의 단어 “은혜”
그러나 내 경험상 사람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짐짓 거룩한 체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란 잘못을 청산한 후에 가는 곳이지 있는 모습 그대로 가는 곳이 아니다. 은혜보다 도덕이 먼저인 것이다. 그 창녀는 말했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안 그래도 충분히 비참한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거예요.”
2. 사랑에 애타는 아버지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면 대답은 대부분 같다. “착하게 살아야죠” 이는 예수님의 비유와 상충되는 답이다. 사실 우리는 그냥“도와주세요”하고 부르짖기만 하면 된다.
3. 은혜의 색다른 계산법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야기 둘 : 끊지 못한 사슬
은혜는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다.
4. 비본성적 행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시니라(롬 12:19) 결국 용서란 믿음의 행위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보다 정의를 실현하는데 뛰어난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8. 불량품사절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전체적 이미지가 향수 분무기에서 살충용 분무기로 바귀지 않았나 우려된다. ‘바퀴벌레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죄악이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죄악이 만연한 주변 사회에 대해 ‘도덕적 살충제’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11. 은혜 기피증
그분의 관심사는 바리새인들이 남들에게 극단론을 강요했다는 것과 정작 중요한 문제는 무시한 채 사소한 것에 치중했다는것이었다. 부엌에서 쓰는 향료의 십일조를 드린 서기관들이 팔레스틴의 불의와 압제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율법주의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최악의 모습을 드러냈다. 바리새인들은 유월절 전에 빌라도의 궁에 들어가지 않으려 궁리했고 십자가 처형날짜도 안식일 규정에 방해되지 않게 정했다. 인류 최악의 범죄가 율법 조항의 엄격한 준수하에 행해진 것이다. 나는 현대에서도 사소한 쪽으로 흐르는 율법주의의 실례를 많이 보았다. 내가 자라난 교회는 머리모양, 보석, 록 음악 등에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인종간 불의나 남부 흑인의 곤경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신학 대학에서도 역사상 최악의 죄에 해당될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치마 길이 재느라 바빠 핵전쟁, 인종 차별, 세계 기아 등 당면 과제를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이려다 복음의 핵심, 즉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만다. 죄의 해답은 더없이 엄격한 행동 규정이 아니다. 죄의 해결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12. 뒤섞인 향기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60분’의 해설자 앤디 루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분명 낙태에 반대합니다. 살인이라 봅니다. 그런데 저는 낙태 반대자들보다는 낙태 찬성자들을 더 좋아하니 딜레마입니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면 후자의 사람들을 택할 겁니다. 앤디 루니가 누구랑 저녁을 먹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가 그토록 열렬히 생명을 예찬하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 비유에서 예수님은 가라지 뽑는데 치중하는 농부는 잡초와 함께 알곡마저 죽일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심판의 문제는 진정한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 개개인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이방 로마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타락상이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 못지않게 로마의 악습-노예제도, 우상 숭배, 폭력 유희, 정치적 압제, 탐욕-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분명 거슬렸을텐데도 바울은 그런 악습에 대해 좀처럼 비난하지 않았다.
13. 뱀같은 지혜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고르고 있는가? 낙태, 성 문제, 생명과 죽음의 정의 등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이슈다. 그러나 정계 복음주의자들이 제작한 각종 문서를 읽노라면 총기 소지권, 교육부 폐지, 나프타 무역협정, 파나마 운하조약, 국회 임기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몇 년 전 전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의 10대사업에 ‘자산 매각 소득세 폐지’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보수 종교 집단 이슈가 보수 정치 집단 이슈와 똑같은 경우가 너무 많다. 우선 순위가 영적인데 있지 않은 것이다. 랄프 리드의 고백처럼 최근 복음주의자들의 정치 참여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지만 낙태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의, 기타 시급한 도덕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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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란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던 것이고, 이 책을 읽음을 통해 요즘의 나의 관심사와 맞물리는 세상속에서의 교회/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용산참사에 대해 한 신부님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장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후속조치도 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일정기간만 하려고 했던 당초의 일정을 변경하여 매일 매일 미사를 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부님은 한 스님과 함께 용산참사 등 문제와 싸우기 위해 오체투지순례를 하고 있다. 또한 신경민 앵커는 클로징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지. "지금 WBC에 열광하는 사이 박연차 리스트는 신구 권력층을 맹수처럼 할퀴었고, 장자연 수사는 거북이처럼, YTN 수사는 토끼걸음으로 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져 가고, 또한 무관심 속에서 결국 당한 사람만 억울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교회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 이념들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성을 가진 교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장 보편적인 이슈, 개인의 구원, 복음화, 성화 등만 다루어야 하는가?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데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어떠한 가치관이 올바른지 일말의 가르침도 주지 않고 세상에서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라는가? 양의 무리를 이끄는 목자는,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는 양들에게 경각심,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뱀같은 지혜를 가지고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골라서,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세상속에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예배 볼 때의 자세, 복장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사회에서 이슈화되는 이를테면, 장애인 인권, 미디어법, 인권위 축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나, 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사실, 직접적으로 나에게 관계가 있지 않는 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관심했다. 일어나고 있는 여러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당장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급급함, 또는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는 방만함,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등으로 생각만 하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언급하다시피 더 많이 고민해야하고 책임져야하는 상태에 올라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성장을 위한 일, 수고를 하지 않고 그저 게으름이 주는 편한 상태에 있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 마음 하나하나들이 모여서 그러한 정신을 가진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인지한다.
하나님, 성장하고 싶지 않으나 성장하기를 원하게 하소서. 게으름에 대항하여 주님의 은혜로 지혜롭게 세상속에서 싸우게 하소서.

투자, 심리학에서 길을 찾다 - 마크 더글러스

책소개 : 리브로, 투자의 90%는 심리가 좌우한다!
투자, 심리학에서 길을 찾다
마크 더글러스 이진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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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001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래 쇄를 거듭하며 지금까지도 아마존닷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책으로 ‘심리’가 주식 시장의 90%를 결정한다고 말하면서 투자테 있어서 심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월가에서 심리 투자의 최고 달인으로 불리며 20여 년간 ‘투자 닥터’ 역할을 해 온 마크 더글러스는 투자자가 가져야 할 원칙은 ‘투자자의 우위(優位)’이며, 투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간에 반드시 우위를 지키면서 시장에 참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정해놓은 투자 원칙이 있다면 그것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투자는 확률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식 투자에 참가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 포지션이 다르므로 이를 모두 예측해서 나의 포지션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예측하려고 하고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분석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바탕에 확고부동한 ‘심리’ 전략이 없다면 모든 노력이 백해무익라는 견해를 제시한다.계속해서 시장이라는 게 애당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없이 나만의 투자 원칙, 즉 우위를 갖고 그것을 지키면서 투자를 해야 비로소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최고의 투자자는 시장이 급락한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공포, 분노에 휩싸이지 않는다. 또, 시장이 급등한다고 해서 기쁨과 희열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오직 소신과 확신 있는 태도로 투자를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원칙"으로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법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 책을 통해 지속적이고도 성공적인 투자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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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줄거리를 보고 정말 괜찮겠다 싶은 책이었다. 정말 실망했다. 샀더라면 정말 억울할 뻔 했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라. 두려움을 없애라는 한 줄짜리 충고를 장장 300여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나열하였다. 다른 얘기겠지하며 읽다보면 또 다시 두려움을 없애라는 얘기로 넘어가고 넘어간다. '심리학'이란 이름과 걸맞게 세뇌를 시키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한편 들었다.
차라리, 줄거리만 읽었을 때가 훨씬 낫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맞아, 주식 투자시 심리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 따라서 변동적인 시장상황이나 남들 하는 말에 휩쓸리면 안돼'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는, 설득력도 없고 장황하게만 나열했기 때문에, 그가 기술한 내용들이, 그리고 정말 심리가 많이 작용하는가 하는 concept 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예를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이 패닉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기술적/펀더멘털 분석, 그리고 봐야하는 지표들을 봐서 투자를 어떻게 해야한다 라든가 하는 방향성 제시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즉, 실질적으로 거쳐왔던 여러가지 경제 상황과 각각의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 및 범하기 쉬운 오류, 따라서 투자방향 제시 같은 것을 기대했었다. 게다가 여기에 나와 있는 예시의 경우도 좀 연관성이 떨어졌다. 이를테면, 난데없이 뱀이 왜 나오냔 말이다. 주식 투자시 발생하는 두려움을 뱀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유했지만 '두려움'이란 공통점만 있을 뿐이다. 투자시 발생하는 실질적인 예를 들어야 훨씬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줄거리와 목차만 읽는 것으로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베스트셀러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