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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월요일

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제1장 그라쿠스 형제의 시대(기원전 133년 ~ 기원전 120년)
제2장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기원전 120년 ~ 기원전 78년)
제3장 폼페이우스 시대(기원전 78년 ~ 기원전 63년)

많은 보통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해간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존심은 복지로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를 되찾아주는 것뿐이다. - 로마의 실업자

그런데 이제는 병역 해당자인 시민도 그 수가 증가세로 바뀌었고, 속주가 평온해져 필요한 군단 수도 줄어들었다. 사람은 필요에 쫓기지 않으면 본질적인 문제도 잊어버리기 쉽다. 로마에 평화가 돌아온 덕분에 로마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 로마의 빈부격차 심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좌절한 요인을 대부분의 후세 연구자들은 시기상조론으로 돌린다. 인간은 사실을 눈앞에 들이대지 않는 한 눈을 뜨지 못하는 법이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예언자라도 무기가 없으면 실패를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마키아벨리라면, 그의 사상을 입증하는 사례의 하나로 그라쿠스 형제를 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라쿠스 형제의 생각이 70년 뒤에나마 실현된 것은 무기를 가진, 즉 인간에게 눈을 뜨도록 강요할 수 있을 만한 권력을 가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라쿠스 형제가 호민관으로서가 아니라 집정관이나 재무관으로서 개혁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10년만 기다렸다가 집정관에 선임되었을 때, 또는 그후 몇 년 더 기다렸다가 재무관에 선임되었을 때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정관이나 재무관이 정책 입안자가 된 경우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정책이라도 원로원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지 않았고, 이를 배경으로 민회에서도 별문제 없이 가결된 예가 적지 않다.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개혁이란, 원래부터 나빴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좋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빠진 면을 고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The Alchemist - Paulo Coelho

In the long run, what people think about shepherds and bakers becomes more important for them than their own Personal Legends.
The secret of happiness is to see all the marvels of the world, and never to forget the drops of oil on the sp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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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 내가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잃어버린다. Old man이 말한바 같이 행복의 비밀이란 결국 세상 속에 살아가되, 자신의 가진 목적을 잊지 말고 끝까지 그것을 지키고 수행해 나가는 것이리라.
꿈을 꾸는 양치기는 멜기세덱을 만나고,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꿈을 좇아간다. 그러나, 마음엔 새로운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찼으나 그러한 마음은 betray를 당하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꿈을 좇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는 그리 생각하고 다시 기존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한 번 모든 것을 잃어봐서일까? 그는 고향으로 갈 충분한 돈을 모으고도 안주 대신 다시 모험을 택한다. 꿈을 이루는 것은 그때만이 기회이지만, 돈/생활 등은 언제든지 다시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열심히 노력했지 않은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바람의 소리, 세상의 소리도 듣고, 이러한 모든 경험을 통해 충분히 현명해 졌으리라 생각되는데, 이제는 꿈을 이룰 것 처럼 보이는데 그 꿈의 끝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시 배신이다. 모든 것을 도둑맞고 이번엔 구타까지 당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헛헛했을까. 피라미드만 가면 모든 것을 이룰 것 같지 않았는가?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있다. 그를 구타하던 도둑이 이런말을 하며 지나간다. "인생이란 그러거야. 나도 2년전에 여기서 꿈을 꿨지. 그 꿈이 말하길, 스페인으로 가서 페허가 된 교회를 찾아 무화과 나무 아래를 파보면 보물이 있을거라 했지. 하지만 바보같은 꿈이야. 누가 그러한 꿈 때문에 사막을 건너겠어? 안 가길 잘했지"
그 장소란, 이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던 곳이었더랜다. 이 소년도 똑같은 그러한 꿈을 꿨고 그는 꿈을 좇아 결국 피라미드까지 왔다. 피라미드 자체가 보물이 아니었지만, 정말 보물이 묻혀있는 곳을 제시하는 이정표였던 것이라.
결국은 원점이라!!. 처음부터 보물이 소년이 양을 치던 바로 그 곳에 묻혀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어찌되었을까? 그는 그 울타리안에서 양 밖에 모르며 그리 살았을까? 여행을 통해 그가 경험했던 것들이 소년의 성숙에 도움을 준다고 이 책은 설득한다. 여정의 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또는 운이 좋아 훌륭한 성취물을 얻을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꿈을 좇아 나아가면, 결국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여정을 통해 소년의 성숙을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는, 나는 가끔 너무 목적에만 집착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본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든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글쎄, 목적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삶의 여정에 좀 더 포커스를 두자. 순간순간 앞만 보고 달리면서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비전의 힘 - 마일즈 먼로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이룰 수 없는 일을 성취하도록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 끊임없는 생각과 우리의 가장 깊은 소원에 근접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비전을 알고 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요한계시록 3:15~16>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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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비전에 관한 책들이 많을까. 기도에 관한 책들도 많다.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밖에 안보인다. 그래서, 완전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이나, 내가 모르는 정보를 제공하는 설명문 형식의 글을 prefer한다. 글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설득력있게, 통찰력을 줄 수 있는 글들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결혼 건축가'의 경우 결혼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화들을 인간들의 심리를 파헤쳐 분석해 놓았지 않은가?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은가.
필립 얀시의 책들도 그러하다 볼 수 있으리라. 이 책은? 글쎄...

2009년 8월 3일 월요일

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제1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서기 284~305년)
제2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서기 306~337년)
제3부.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
군사도 세무도 결국 정치였다. 세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국정의 근간이다.
콘스탄티누스가 통치란 통치를 받는 쪽의 수요를 받아들여 현실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였다면, 5%밖 안되는 지지자를 위해 이익을 유도할 리는 없다. 콘스탄티누스도 환기시켜야만 비로서 생겨나는 수요도 있다고 믿는 지도자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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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몰라도 콘스탄티누스는 많이 들어봤다. 사회 시간에 줄줄이 외웠었지.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로.
작가가 말한대로 그가 기독교에 대해 favour 한 것은 의아스러운 점이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은 소수였고,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의 정서와도 반대이고, 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탄압하는 정책을 폈었고, 따라서 정치가라면 기독교를활성화하는 정책을 펴지는 않았을텐데. 왜 제 살을 깍아먹는 정책을 추진했을까?
단지 왕권은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며 신성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만히만 있어도 그는 3세기의 다른 황제들보다는 뛰어났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가 그러한 로마적인 정서에서 반대기류 없이 기독교 옹호 정책을 무리없이 수행한 점은 역시 뛰어나다. 또한, 당시의 어려운 경제상황도 그의 정책 수행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3세기의 로마는 잦은 야만족의 침입과 무거운 세금으로 시민들은 생계유지에 급급한 실태였다. 따라서 황제가 무슨 정책을 펴든 관심을 갖기 어렵지 않았을까.
요즘 정치가들이 단순히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고도의 cunning으로 또는 포퓰리즘식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정책에 있어서는 좀 더 순정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현재를 보면, 사람들은 world wide crisis란 외부적 환경과 자기 중심적인 내부적 변화에 따라 정치/사회적 이슈에서 멀어진다. 즉, 정부가 무슨 정책을 펴든 자기 살기에 급급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3세기의 로마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정책이 이후 유럽을 중세시대로 이끌었던 것처럼, 지금 현재의 신자본주의, 미디어법 등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