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프롤로그: 마지막 최고의 단어 “은혜”
그러나 내 경험상 사람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짐짓 거룩한 체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란 잘못을 청산한 후에 가는 곳이지 있는 모습 그대로 가는 곳이 아니다. 은혜보다 도덕이 먼저인 것이다. 그 창녀는 말했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안 그래도 충분히 비참한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거예요.”
프롤로그: 마지막 최고의 단어 “은혜”
그러나 내 경험상 사람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짐짓 거룩한 체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란 잘못을 청산한 후에 가는 곳이지 있는 모습 그대로 가는 곳이 아니다. 은혜보다 도덕이 먼저인 것이다. 그 창녀는 말했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안 그래도 충분히 비참한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거예요.”
2. 사랑에 애타는 아버지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면 대답은 대부분 같다. “착하게 살아야죠” 이는 예수님의 비유와 상충되는 답이다. 사실 우리는 그냥“도와주세요”하고 부르짖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면 대답은 대부분 같다. “착하게 살아야죠” 이는 예수님의 비유와 상충되는 답이다. 사실 우리는 그냥“도와주세요”하고 부르짖기만 하면 된다.
3. 은혜의 색다른 계산법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야기 둘 : 끊지 못한 사슬
은혜는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야기 둘 : 끊지 못한 사슬
은혜는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다.
4. 비본성적 행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시니라(롬 12:19) 결국 용서란 믿음의 행위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보다 정의를 실현하는데 뛰어난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시니라(롬 12:19) 결국 용서란 믿음의 행위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보다 정의를 실현하는데 뛰어난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8. 불량품사절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전체적 이미지가 향수 분무기에서 살충용 분무기로 바귀지 않았나 우려된다. ‘바퀴벌레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죄악이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죄악이 만연한 주변 사회에 대해 ‘도덕적 살충제’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전체적 이미지가 향수 분무기에서 살충용 분무기로 바귀지 않았나 우려된다. ‘바퀴벌레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죄악이다!’ 뿜어라, 뿌려라, 뿜어라, 뿌려라.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죄악이 만연한 주변 사회에 대해 ‘도덕적 살충제’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11. 은혜 기피증
그분의 관심사는 바리새인들이 남들에게 극단론을 강요했다는 것과 정작 중요한 문제는 무시한 채 사소한 것에 치중했다는것이었다. 부엌에서 쓰는 향료의 십일조를 드린 서기관들이 팔레스틴의 불의와 압제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분의 관심사는 바리새인들이 남들에게 극단론을 강요했다는 것과 정작 중요한 문제는 무시한 채 사소한 것에 치중했다는것이었다. 부엌에서 쓰는 향료의 십일조를 드린 서기관들이 팔레스틴의 불의와 압제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율법주의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최악의 모습을 드러냈다. 바리새인들은 유월절 전에 빌라도의 궁에 들어가지 않으려 궁리했고 십자가 처형날짜도 안식일 규정에 방해되지 않게 정했다. 인류 최악의 범죄가 율법 조항의 엄격한 준수하에 행해진 것이다. 나는 현대에서도 사소한 쪽으로 흐르는 율법주의의 실례를 많이 보았다. 내가 자라난 교회는 머리모양, 보석, 록 음악 등에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인종간 불의나 남부 흑인의 곤경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신학 대학에서도 역사상 최악의 죄에 해당될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치마 길이 재느라 바빠 핵전쟁, 인종 차별, 세계 기아 등 당면 과제를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이려다 복음의 핵심, 즉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만다. 죄의 해답은 더없이 엄격한 행동 규정이 아니다. 죄의 해결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이려다 복음의 핵심, 즉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만다. 죄의 해답은 더없이 엄격한 행동 규정이 아니다. 죄의 해결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12. 뒤섞인 향기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60분’의 해설자 앤디 루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분명 낙태에 반대합니다. 살인이라 봅니다. 그런데 저는 낙태 반대자들보다는 낙태 찬성자들을 더 좋아하니 딜레마입니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면 후자의 사람들을 택할 겁니다. 앤디 루니가 누구랑 저녁을 먹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가 그토록 열렬히 생명을 예찬하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 비유에서 예수님은 가라지 뽑는데 치중하는 농부는 잡초와 함께 알곡마저 죽일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심판의 문제는 진정한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 개개인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이방 로마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타락상이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 못지않게 로마의 악습-노예제도, 우상 숭배, 폭력 유희, 정치적 압제, 탐욕-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분명 거슬렸을텐데도 바울은 그런 악습에 대해 좀처럼 비난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60분’의 해설자 앤디 루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분명 낙태에 반대합니다. 살인이라 봅니다. 그런데 저는 낙태 반대자들보다는 낙태 찬성자들을 더 좋아하니 딜레마입니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면 후자의 사람들을 택할 겁니다. 앤디 루니가 누구랑 저녁을 먹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가 그토록 열렬히 생명을 예찬하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 비유에서 예수님은 가라지 뽑는데 치중하는 농부는 잡초와 함께 알곡마저 죽일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심판의 문제는 진정한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 개개인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이방 로마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타락상이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 못지않게 로마의 악습-노예제도, 우상 숭배, 폭력 유희, 정치적 압제, 탐욕-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분명 거슬렸을텐데도 바울은 그런 악습에 대해 좀처럼 비난하지 않았다.
13. 뱀같은 지혜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고르고 있는가? 낙태, 성 문제, 생명과 죽음의 정의 등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이슈다. 그러나 정계 복음주의자들이 제작한 각종 문서를 읽노라면 총기 소지권, 교육부 폐지, 나프타 무역협정, 파나마 운하조약, 국회 임기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몇 년 전 전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의 10대사업에 ‘자산 매각 소득세 폐지’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보수 종교 집단 이슈가 보수 정치 집단 이슈와 똑같은 경우가 너무 많다. 우선 순위가 영적인데 있지 않은 것이다. 랄프 리드의 고백처럼 최근 복음주의자들의 정치 참여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지만 낙태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의, 기타 시급한 도덕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고르고 있는가? 낙태, 성 문제, 생명과 죽음의 정의 등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이슈다. 그러나 정계 복음주의자들이 제작한 각종 문서를 읽노라면 총기 소지권, 교육부 폐지, 나프타 무역협정, 파나마 운하조약, 국회 임기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몇 년 전 전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의 10대사업에 ‘자산 매각 소득세 폐지’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보수 종교 집단 이슈가 보수 정치 집단 이슈와 똑같은 경우가 너무 많다. 우선 순위가 영적인데 있지 않은 것이다. 랄프 리드의 고백처럼 최근 복음주의자들의 정치 참여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지만 낙태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의, 기타 시급한 도덕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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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란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던 것이고, 이 책을 읽음을 통해 요즘의 나의 관심사와 맞물리는 세상속에서의 교회/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용산참사에 대해 한 신부님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장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후속조치도 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일정기간만 하려고 했던 당초의 일정을 변경하여 매일 매일 미사를 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부님은 한 스님과 함께 용산참사 등 문제와 싸우기 위해 오체투지순례를 하고 있다. 또한 신경민 앵커는 클로징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지. "지금 WBC에 열광하는 사이 박연차 리스트는 신구 권력층을 맹수처럼 할퀴었고, 장자연 수사는 거북이처럼, YTN 수사는 토끼걸음으로 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져 가고, 또한 무관심 속에서 결국 당한 사람만 억울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교회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 이념들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성을 가진 교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장 보편적인 이슈, 개인의 구원, 복음화, 성화 등만 다루어야 하는가?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데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어떠한 가치관이 올바른지 일말의 가르침도 주지 않고 세상에서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라는가? 양의 무리를 이끄는 목자는,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는 양들에게 경각심,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뱀같은 지혜를 가지고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골라서,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세상속에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예배 볼 때의 자세, 복장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사회에서 이슈화되는 이를테면, 장애인 인권, 미디어법, 인권위 축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나, 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사실, 직접적으로 나에게 관계가 있지 않는 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관심했다. 일어나고 있는 여러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당장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급급함, 또는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는 방만함,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등으로 생각만 하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언급하다시피 더 많이 고민해야하고 책임져야하는 상태에 올라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성장을 위한 일, 수고를 하지 않고 그저 게으름이 주는 편한 상태에 있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 마음 하나하나들이 모여서 그러한 정신을 가진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인지한다.
하나님, 성장하고 싶지 않으나 성장하기를 원하게 하소서. 게으름에 대항하여 주님의 은혜로 지혜롭게 세상속에서 싸우게 하소서.
용산참사에 대해 한 신부님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장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후속조치도 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일정기간만 하려고 했던 당초의 일정을 변경하여 매일 매일 미사를 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부님은 한 스님과 함께 용산참사 등 문제와 싸우기 위해 오체투지순례를 하고 있다. 또한 신경민 앵커는 클로징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지. "지금 WBC에 열광하는 사이 박연차 리스트는 신구 권력층을 맹수처럼 할퀴었고, 장자연 수사는 거북이처럼, YTN 수사는 토끼걸음으로 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져 가고, 또한 무관심 속에서 결국 당한 사람만 억울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교회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 이념들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성을 가진 교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장 보편적인 이슈, 개인의 구원, 복음화, 성화 등만 다루어야 하는가?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데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어떠한 가치관이 올바른지 일말의 가르침도 주지 않고 세상에서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라는가? 양의 무리를 이끄는 목자는,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는 양들에게 경각심,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뱀같은 지혜를 가지고 싸울 문제를 지혜롭게 골라서,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세상속에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예배 볼 때의 자세, 복장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사회에서 이슈화되는 이를테면, 장애인 인권, 미디어법, 인권위 축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나, 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사실, 직접적으로 나에게 관계가 있지 않는 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관심했다. 일어나고 있는 여러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당장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급급함, 또는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는 방만함,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등으로 생각만 하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언급하다시피 더 많이 고민해야하고 책임져야하는 상태에 올라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성장을 위한 일, 수고를 하지 않고 그저 게으름이 주는 편한 상태에 있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 마음 하나하나들이 모여서 그러한 정신을 가진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인지한다.
하나님, 성장하고 싶지 않으나 성장하기를 원하게 하소서. 게으름에 대항하여 주님의 은혜로 지혜롭게 세상속에서 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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