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우리는 헌신을 깨뜨려도 괜찮을만한 구실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헌신이란 순탄한 시절에는 말하기 쉽지만 역경이 닥칠 때는 지키기 어려운 도전인 것이다.
이들이 하나씩 예수님을 실망시킬 때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실패의 순간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너희가 다시 시작할 그날이니, 그 때는 너희도 잘할 수 있음이니라. 나는 너희를 믿노라. 자, 가자! 이제 숨을 쉬어라!'. 요즘 사람들은 이런 수준의 헌신을 두려워한다. 친구에게 이런 헌신을 하면 너무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서로 세워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상대방의 변화, 즉 성숙과 성인다운 반응을 지금 당장 원한다. 인내란 다른 사람에게 성장할 시간과 여지를 충분히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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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저자의 책인 내면세계의~ 와는 달리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소 지루했다. 본래 에세이 형식으로 된 책이나 교훈적인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는 이미 넘쳐날만큼 알고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을 행동하는 것이 문제이며 따라서 그러한 구체적인 솔루션 제공이 아니라 사실 나열의 교훈적인 책이여서인지, 또는 몇달여 동안을 계속 이런류의 책들만 읽어와서인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들의 모음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뭐, 나중에 다시 편편이 읽어도 좋을 책이리라.
성실하다고 나름 생각했었다. 성실을 말하려면 최소 6개월은 해봐야하지 않을까. "이번주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잖아. 그래서 한번쯤 이렇게 새벽기도를 빠지는 것은 당연해. 또는 그애들도 가끔 빠지지 않느냐. 나도 괜찮을거야" 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헌신, 성실은 정말 순조롭게 지나가는 시간에는 말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힘들면 옳타구나 하며 그 핑계로 합리화를 하며 지키지 않으려 한다. 사람사이에서도 평소에는 관대하다가도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건드리기만 해도 불을 뿜을것 같은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의식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날마다 다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금새 분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평소의 말씀과 기도훈련의 중요성은 어려움이 닥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이런말을 하는 친구가 나는 얼마나 있을까? '매사가 짜증나,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이것을 읽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역시 회사 동료와 친구는 다르구나였다. 회사에서는 한꺼풀 나를 포장하고 있구나였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가 지금은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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