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제1장 어중간한 틈새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하기를 원합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
순례자란 여정 중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드시 먼곳까지 나가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희미하고 불완전하긴 하지만 감사해야 할 대상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 프레드릭 뷔크너
하지만 그분이 어떻게 응답하실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제3장 의심을 위한 공간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앙을 버렸고 어떤 때는 상처를 받거나 환멸감에 빠져 슬그머니 뒷걸음질쳤다.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며 곁길로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나를 하나님 앞으로 다시 이끌어왔다. 그것이 무엇일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내가 지금까지 신앙을 놓지 않고 굳게 잡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런 고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가장 분명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뷔크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심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신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파멸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의심을 위한공간이 없다면, 나를 위한 공간도 없을 것이다."
제5장 양면성을 지닌 믿음
언젠가 우리가 욥처럼 하나님을 대면하고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들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갖는다면, 아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지 모른다. "내 생각에는 사단이 관계된 듯하구나"
다니엘은 자기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주기 위해 한 천사가 나타났다. 그 천사는 다니엘의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오다가 20일동안 '바사국 군주'에 의해 억류되어 있었다.
제6장 믿음 안에 살기
머튼은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비밀을 발견했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를 압박해오는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근심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된다. 내가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그들이 나를 바람직하게 여기는지 항상 걱정한다.
제11장 로제타 스톤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있어?" 나는 이런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침묵하셨다. 예수님계서는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밤을 지새며 절박하게 기도하셨다.
제13장 완전한 변화
이안 피트-왓슨 "어떤 것은 가치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것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다."
텔레비전 쇼를 본 다음에는 잠시 여유를 두고 그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자문해보라. 성경을 읽기 전에는 잠시 멈추고 집중하는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이런 과정을 계속 되풀이해서 기계적인 행동이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수준에 이르도록 해야한다.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성취와 경쟁을 가장 우선시하는 세상에 이끌려다니는 것이다.
제14장 통제불능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이들을 믿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믿지만, 마음속에 아무런 열망이 없고, 분노도 없고, 의심도 없고, 절망의 요소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믿는 것이다 - 미구엘 드우나무노
제15장 열정
헨리 나우렌 - 기도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기도하기를 좋아하는가? 기도하기를 원하는가? 기도 시간을 지키고 있는가? 솔직히 앞의 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63년의 생애와 38년간의 성직자 생활을 해온 지금, 나의 기도는 마치 돌처럼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기도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고, 기도에 관한 책을 읽고, 기도에 관한 글을 썻으며, 수도원과 기도원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영적인 여정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지도했다. 지금쯤이면 벌써 나는 영적인 열정으로 가득차고, 기도로 완전히 불타버려야 마땅하다. …요즘의 나의 기도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무미 건조함이다. 내 기도의 모호함과 무미 건조함이 하나님의 부재를 나타내는 증거인가.
제19장 부모
사도 바울은 논쟁거리가 되는 행동들을 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할 수도 있었지만 믿음이 약한 자와 성숙하지 못한 크리스천들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자제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제랄드 맨리 홉킨스 - 영적인 고독감에 빠졌을 때,
우리의 기도는 황량한 길에 버려진 것 같고 우리의 찬송은 광대한 침묵 속에 사라져버립니다.
제20장 실낙원
전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햇지만 가장 많이 다운로드되는 것은 포르노 사진이다. 모든 진보는 또 다른 타락을 유발시킨다. "오염되지 않은 행복을 즐기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프리모 리바이)". 우리는 최소한의 손실을 입는 쪽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빈센트 반 고호는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점점 우리가 이 세상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이 세상은 완성하지 못한 연구와 같다.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잘못된 연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니?"
제21장 하나님의 아이러니
밭은 개간되어야 하고, 철은 녹아야한다. 과수원의 나무들은 가지를 쳐야하고, 밀은 키질을 해야한다. 물레방아를 돌리려면 물을 위쪽에 모아두어야한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다. 패배로부터 더욱 강인한 노력이 생겨나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목표를 높이 세워야하며, 절망속에서 희망을 품어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나야 하고 죽으면 살아나야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 조지 델
제23장 성금요일의 열매
주일의 희미한 윤곽은 소망 - 이보다 더 확실한 표현은 없다 - 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토요일의 긴 여정을 가고 있다 - 조지 스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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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의심하는 마음 때로는 너무나 황량한 나의 마음들에 대한 답을 준다는 것이다. 이 필립 얀시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어서 교회에 머물러 있다는 말을 하다니. 수십년을 목회자로 살아온 사람이 기도하는 것의 무감각에 대해 말하다니. 이러한 부분이 어찌 내게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무척 재미있다. 한참을 끝도 없어 보이는 의심속에 빠져있던 내게 같은 경험을 가지고 고민해온 선배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에게 빠져들수밖에 없었다. 점점 읽어나가면서 의심에서 확신으로 나아가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못내 서운해하기도 했었다. 나는 아직 의심속에 빠져있는데 조금만 더 나를 위로해주지, 왜 그는 믿음으로의 여정으로 이야기를 돌리는가 하면서.
의심을 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의심을 할 때의 그러한 열정이 지금의 무미건조함보다는 나아 보인다. 의심을 하면서 나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질문했고 생각했고 싸우기도 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분명 한단계 나아진 듯하다. 또한 지식적으로도 이전보다는 채워졌다. 그러나 미구엘이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경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닌가. 순종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순종을 했을 시 하나님의 영광 보다 내가 느끼는 성취감, 뿌듯함을 먼저 추구한다. 그래서 순종을 하지 못했을 시 "내"가 했어야하는데 못한 것에 대한 자책, 즉 내 의지의 실패가 하나님에 대한 회개보다 더 크게 나를 실망에 빠뜨린다.
새벽기도를 나가고 기도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가르치고, 단지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도 들어가는데 어찌 이리 기계적일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생각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생각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 말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금 주일을 소망하며 토요일의 긴 여정을 가고 있는가? 선배들이 말했다시피 우리는 그런 상태일 수 밖에 없기때문이라고 무엇을 해도 그러할테니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면이 많이 있질 않나. 우리의 실패까지도 for the good을 위해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주님에 대해 종종 말한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인간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내 모습과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내 모습과 이런 나에 결국은 실망하셔서 사울처럼 포기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약한 마음도 든다.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인내하신다는 말인가. 나는 언제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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