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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5일 금요일

로마인 이야기_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 상을 이구구,,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찔끔찔끔 읽어도 괜찮은 것이 전체가 소이야기들로 짜여져서 그런가 보다. 어쨌든 요 며칠 가속도를 내어 읽어 다행히 이해가 가기 전엔 카이사르 하권까지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카이사르 상은 카이사르의 유년시절부터 갈리아전쟁기로 구성되어 있고 갈리아 전쟁기 부분이 크게 2/3정도를 차지한다. 다음과 같은 말처럼 40세 이전의 그는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도 않고 오히려 내겐 바람둥이에 허풍쟁이 한량처럼 느껴진 면이 많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처럼 잘생긴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도 미움을 받지 않고 사랑을 받는 그의 능력, 어마어마한 빚을 지면서도 거리낌 없던 그 태연자약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부러워할 만하다.


카이사르는 40세가 지나서야 ‘출세’했다. 전기를 쓰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카이사르는 ‘출세’하자마자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아니,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드물기 때문에 곤란함은 갑절로 늘어난다. (115p)
그는 돈에 굶주려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버릴 생각도 없었다. 단지 남의 돈과 자기 돈을 구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돕기 위해 태어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 그럴 때의 그 양반은 저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태연자약 바로 그 자체였다. (340p)


9년여에 걸친 갈리아 정복전쟁, 좀 심심할 만 하면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한번 건드려보고, 라인강을 건너 게르만인을 위협했던 그의 총사령관으로서의 자질은 놀랄만하다. 나는 카이사르에 대한 역사가 아닌 소설을 읽고 있다. 물론 피정복자인 갈리아인 입장에서라면 조용히 자기네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 평화로운 그네들을 로마화 (문명화)란 명분으로 건드린 카이사르가 마치 우리의 식민지화와 대립된 문명화를 외친 일제의 놈들과 같은 부류일지도 모른다. 관점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일예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가 못 이룬 전국시대를 통일한 인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일으킨 ‘전쟁광’으로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영웅’으로 불린다. 카이사르에서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로마제국화의 환경에서 드러나는 그의 전략가, 정치가, 사상가로서의 자질이다.

내 생각에는 전투도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70퍼센트 정도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나머지 30퍼센트는 무대에 올라간 뒤의 성과로 정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100퍼센트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범한 지휘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전투도 연주와 비슷해서 오랜 준비를 거친 끝에 단 몇 시간으로 승부가 결정난다. (459p)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또한 공적으로 이룩하고 싶은 무언가를 갖지 않은 사람은 실질적인 은둔 생활로 일관해야 인간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고대에는 이런 생활방식을 에피쿠로스주의(쾌락주의)라고 불렀다. (495p)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돈도 아닌 현재의 공화정체제를 타도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이상적 신념을 위해 살아간 그의 삶은 참 쿨하며 그는 진정 고독하고 오만한 천재이다. 크라수스를 무찌른 수에나스의 뛰어남을 질시한 파르티아 왕은 오히려 그를 죽였다. 자 뛰어난 카이사르여, 술라의 숙청과 같은 일들이 다시 일어날까? 독재체재에 심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당신을 두려워하는 원로원들을 그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537p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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