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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소울메이트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나 해변의 카프카란 책으로 인해 좋아하는 작가이다. 상실의 시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인공이 비오는 날, 길거리엔 아무것도 없고, 홀로, 공중전화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쓸쓸하면서, 우울한 장면이다. 일본 만화나 소설엔 이런식의 해피도 새드도 아닌 결말을 가진것들이 꽤 있다.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남는점도 있지만,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한편 들게 만든다.

이 시점에 내가 이 작가의 '소울메이트'란 책을 택한 것은 메마른 내 감성에 그 시절의 그러한 아련한 감정을 부어주고 싶어서였다. 삶은 혼자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그 고독감, 허무함을..
결론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totally different 했지만.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토이 시게사토가 특정 외래 단어(coffee, restaurant..)에 대해 생각나는 글을 쓰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상당히 재밌었다고 했지만, 이런!, 나는 테러블했다.

첫째 책을 출판했다면 대중을 상대로 낸것인데, 이들은 수수께끼같은 짤막한 글만 기술하고, 여기에 숨어있는 극단적 함축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듯하다. 뭐 다른사람이야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자신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읽는 나에게는 사실 어처구니 없는것들이 많았다. 뭐 지식이 짧은 내 탓이려나?
이것은 마치 이와 같은데, 칫솔이 있다면 칫솔에 얽힌 그들만의 추억이 있다. 이 추억은 슬프기도 즐겁기도 한 개인적인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글에서는 작가가 독자의 공감을 얻기위해 인과관계, 배경묘사 등을 과정을 거쳐서 칫솔에 대해 기술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전혀 없이 그들만의 개인사를 극히 짧은 문장으로 기술한다. 따라서, 이것을 읽는 독자는 최소한 공감도 없으며 또한 그들이 바라는 즐거움을 가질 수도 없다. 우리는 그들이 아닌 것이다.
책에서의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이런...된장
"스퀴즈(squeeze)"
' 서드 베이스와 홈 베이스 사이에' 라고 시합후 오오스기 선수는 말했다. '북회귀선과 같은게 있어서 그것이 내발을 멈추게 한겁니다' -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에서


둘째,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by 움베르토 에코 책은 일상을 패러독스로 재미나게 기술한 책이다. 이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에코도 책에서는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보다 하위 레벨인 (by 내가 생각키엔) 무라카미 등은 또는 동급이라더라도, 어떻게 이와같은 or 대중에게 전혀 친절치 않은 or 대체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책을 퍼블리쉬할 생각을 하다니..
뭐랄까. 자신들은 유명한 작가이니 아무렇게나 쓴 낙서같은 것도 대중들은 좋아할 것이다. '너희들이 이 책을 보고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은 너희들 탓이고 너희들이 무지해서이다'라는 거만함이 묻어나는 책이랄까.


게다가 번역은 헐....일본어는 번역이 대개는 잘된편인데..그리 어렵지 않을터인데..기계적으로 번역해서인지 문단을 읽어나가는게 매끄럽지 않았다. 혹시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거 아냐?
사소하지만 예를들어
"수영하는 이웃의 딸을 발견했다.
'이렇게 추운데 용케 감기도 안 걸리나 보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바보'
딸은 말했다"
에서 두번째 딸이라고 표시된 부분은 이런식으로 표현하면 말하고 있는 자의 딸이라고 해석키 쉽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선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읽을때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소녀는'이란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적절했을 것 같다. 에효..


소울메이트는 원제가 '꿈속에서 만나다'이다. 뭐, 소울메이트란 제목으로 변경한것은 한국인 독자를 의식한, 심히 왜곡한 표현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속았다. 다시 한번, 이런 된장할!
암튼, 원제를 들었을때 황진이 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서로 그리는 심정은 꿈 아니면 만날 수가 없건만,
꿈속에서 내가 님을 찾아 떠나니
님은 나를 찾아 왔던가.
바라거니 길고 긴 다른 날의 꿈에는,
오가는 꿈길에 우리 함께 만나지기를"
- 서로를 그리는 꿈(相思夢) - 황진이

서로를 찾아 헤매이지만 각기 상대방에게 가는 길이어서 결국은 만나지 못했다는 시이다. 두 작가가 서로 공감하고 그래서 공동집필하게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각기 다른 인격체이고 따라서 완전공감은 현실에선 불가능하고 그래서 꿈속에서나 만날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면, 당신들끼리 이러한 것을 공유했으면 안되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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