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교회는 신도들에게 경건한 만족감이나 주고 신자가 불신자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이나 심어주고 있어. 교인들의 생활은 바람직한 것 같아. 그렇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교회에 가면 열등감과 사랑의 부재를 느껴"
주변에서 강한 군대가 일어나 국경을 위협하면 히브리인들은 적군의 우상들을 빌려다 섬겼다. 유대교가 지켜주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손해보지 않도록 양쪽에 내기를 걸은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행동하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고 모든 우상 숭배의 핵심이 되는 질문이다.
정확한 교리를 존중하고 높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엄격한 크리스천들은 흔히 독선에 빠지기 쉽다. 동시에 성적인 문란을 변명하기 위해 성경 속에서 빠져나갈 구멍이나 부지런히 찾고 있는 일부 MCC 소속 동성 연애자들도 독선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우리속에 있는 억제하거나 합리화시키고 싶은 죄를 표면화시켜야한다.
우리는 악을 평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히틀러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보다 더 사악하다는 사실에 변태적 위안을 받는다. 아이러니컬하게 히틀러가 극단적인 경향을 보일때 우리는 우리의 편협이나 맹목적인 숭배 경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세를 믿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편의상 아키레마(Acirema)라고 부르자. 아키레마 사람들은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에게 내세가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 결과 젊읆의 환상을 유지하는 산업이 번창한다. 베스트 셀러가 된 책과 비디오는 40대 여자가 살빼기 운동을 시범으로 보여주면서 이 운동을 충실하게 하면 10년은 젊어보일수 있다고 선전한다.
아키레마 종교는 지금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보상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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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립 얀시가 Christianity today 에 쓴 컬럼들은 모은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이러한 컬럼들을 통해 '하나님, 나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등등의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한 책들을 먼저 읽은 나로선 아, 이 부분이 심화되어 그러한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왜 이러한 책을 골랐을까? 이유는 그 제목에 있다. 불안 또는 회의에 관하여,,,이 책 제목으로 인해서이다. 불안과 회의에 대한 답을 찾고자 또는 위로를 찾고자 이 책을 찾은 것이다.
이 책은 묵상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한편 한편의 글을 심도 깊게 묵상을 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내세를 믿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현세에서 그토록 잘살려 하고, 외모에 신경쓰고, 다른 사람보다 못가진 것에 대해 기를 쓰고 이루려 할까? 아키레마 사람들처럼 젊음을 찬양하고 늙어가는 것에 대해 한탄하고 슬퍼하고 있다.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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