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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춤추시는 하나님 by 헨리 나우웬

<책 속에서>애통하는 것은 자신에게 정체감을 주는 그 무엇에 대해 죽는 것이다. 배우자, 부모, 교회 교인, 동네나 나라의 주민이라는 여태 꼭 쥐고 있던 자기 정체의 일부를 놓는다. 이렇듯 우리는 때로 끔찍이 떠받들던 것들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적지 않게 눈물 흘리며 인정한다. 이 모든 부담 때문에 어떤 이들은 냉소적이 된다. '다 쓸데없는 짓'이라 결론 짓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약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절대 다치지 않으려거든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된다. 취미나 소소한 사치로 마음을 꼭꼭 동여매라.- CS 루이스

외로움을 느끼면 우리는 그 아픔을 없애 줄 남편, 아내, 친구 등을 찾는다. 죽자살자 매달릴 때도 있
다.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이 내 곤경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성급하게 결론 짓는다. 그러나 사람이나 사건을 내 기쁨의 원천으로 삼아 이렇게 다른 신(God)을 찾을때마다 내 슬픔은 오히려 커질 뿐이다.

많은 만남에서 우리는 고통을 외면하려 한다. 친구가 슬퍼하는 것을 보면 슬픔을 빨리 떨치게 해주려 한다. 그런 이런 행동은 진정 상대와 '함께 아파하는(compassion)'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불편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서 거기서 물려서려는 자신의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에게는 은연중에 '기분 좋게 살아야'한다는 무거운 부담을 전달하는 셈이다.

우리는 얼마나 경쟁적인지! 우리는 삶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남다르고 특별한 존재가 되려 한다. 인간에게 긍휼, compassion 이 가능한것인가? 그것이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우리는 자신이 주목받아 마땅하고, 칭찬받을 만큼 선하며, 애정과 관심을 당연히 받아야 할 존재임을 입증하느라 늘 바쁘다.


1년전 오늘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나는가? 대부분 그날 우리를 지배했던 일들은 이미 흐릿해졌거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존재가 덧없으며 물처럼 손안에 쥘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저며 올 수 있다.

시간은 단순한 시간 흐름인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chairos)로 바뀐다. 카이로스란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헬라어 단어로, 기회 즉 계획한 목표를 위해 무르익은 순간을 뜻한다. 시간을 카이로스의 개념으로 보면 삶이 여전히 고달파 보이고 힘겨운 순간이 닥쳐 와도 우리는 '이 모든 와중에도 뭔가 좋은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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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얇고 되게 되게 쉬운 가볍게 읽을 책이라 생각했다. 누구 책이더라? 게으름처럼..그저 화장실에서 잠깐 잠깐 읽어도 될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이런....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넘길수있는 책이 아니잖은가..

compassion
그렇다면 나는 친구의 아픔에 무엇을 해주어야하는가? 친구의 힘듦, 어려움에 나는 대개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이었다. '왜 거기서 머물러 있느냐? 그러지 말고 이런식으로 해봐라' 저자가 말한바와 같이 친구와 같이 진정한 슬픔을 느끼기를 두려워해 그러한 감정의 물결, 그리고 같이 공유해야하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내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또한, 저자가 말한 바에 비추어보니 나의 행동은 오히려 친구의 슬픔에, '너는 그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 왜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느냐. 앞으로 나아가라'는 식의 비난을 더하거나, 오히려 친구에게 의무감을 더하거나 하는 짓으로 보인다.
아, 나는 얼마나 안다고 얼마나 쉽게 친구의 고민, 슬픔을 쉽게 말하는가?

긍휼이란 이름을 내세우면서
형식적으로, 그리고 자기의를 세우는 것으로(욥의 친구들처럼) 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해야하는, 어려운 것이구나. 나의 본성에, 그리고 의지적으로 하면, 또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것으로는 안되는구나.
아, 나의 얇팍한 입술이여!


chairos - 때의 무르익음
1년전 이맘때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2년전 이맘때는 새벽기도도 다니고, 3년전 이맘때는 무엇을 했을까? 일을 하면서의 실수를 해서 수치감을 가지기도 하고, 숙제의 스트레스로 인해 이곳저곳 폐끼치기도 하고, 나는 왜 똑같은 일을 이리 반복하나 자괴하기도 하고...
지금의 나는? 일도 바쁘고, 학교 숙제도 바쁘다. 교회에서 자그마하게 맡고 있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벌리기 보다는 주변에서 들어오는 것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만도 벅차하고 있다. 생각을 못하고 있다랄까. 시간의 흐름에 그저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돌리시는겁니까?
그러나, 아버지, 이러한 흐름속에 돌을 만나 주춤하다가도,
때로는 물고기를 만나 유희하다가도,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 바다로 가는 길의 여정임을
그래서 좀 더 편하게 흐름에 맡길 수 있도록,
또한 그 흐름속에서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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