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란 우리가 몰두하던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전략이다. 경배란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마련하는 시간과 장소이다. 이것은 그분이 시간과 장소를 한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중요시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정기적으로 중단하지 않으면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그분께 나아갈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leap over a wall)
실존적 절망은 아우슈비츠나 시베리아의 지옥 같은 상황에서 싹트지 않았으며 오히려 파리의 카페, 코펜하겐의 커피숍, 비버리힐즈의 호화스런 궁전에서 싹텄다. 전도서와 욥기의 두드러진 차이를 생각해 보라. 둘은 똑같은 주제를, 인생의 불공정함, 왜 고난이 존재하는가, 왜 악한 사람들이 번성하며 선한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가 등등 많이 다루지만 그 음조는 너무나 다르지 않는가! 전도서는 무의미(헛됨)와 공허를 말하는 반면에 욥기는 배신과 열정을 알리며 공의를 부르짖는다. 욥은 하나님께 주먹을 휘두르며 그분에게 해명과 응답을 요구한다. 전도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포도주 잔을 또 한 번 기울인다.
웬델 베리는 성장일로에 있는 안락한 미국 사회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고 당연시한다. 사랑이 없는 결혼, 기쁨이 없는 섹스, 유쾌하지 않은 술자리, 적절한 의식이 없는 출생과 축하와 죽음, 의심이나 시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없는 신앙, 관용이 없는 예절 등 ---작고 유익이 없는 일에 대한 즐거움, 기쁨, 경이, 환희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은 외의 작용에 의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즐거움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에게 성욕과 미각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 같은 좋은 선물을 주신 분을 잊어버릴 수 있다. 전도서가 말하듯이 이러한 경우에 즐거움에 대한 전적인 몰두는 역설적으로 극한 절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도서는 즐거움을 좇는데 우리 삶을 바치게 만들 정도로 즐거움을 너무나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즐거움이 궁극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잊혀지지 않을 깨달음도 준다.
예수께서는 고통의 문제에 결코 철학적인 해답을 주려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실존적인 해답을 주셨다. 나로서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그분에게서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시며 그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나는 저주시편을 악과 불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델로 본다. 우리는 악에 대한 공포와 격분의 반응을 억누르려 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공의를 시행하려 해서도 안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수의 감정들을 고쳐주셔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가 그 감정들을 하나님께 내어놓을 때에만 하나님께서는 고치고 치료해 주실 수 있다.
비극이 찾아올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제한된 시각에 갇이고 말것이다. 욥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비난하고 그분을 적으로 보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욥은 하나님께 대담하게 물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1-2장에서 막 뒤의 시각은 욥이 쫓겨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여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반응에 자신의 평판이 좌우되도록 허락하셨다. 욥이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직접 거의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그를 보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그때보다 더 가까이 계셨던 적은 없었다. 다음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힘든 진리이다. 그 때문에 말성이다가 쓰는 것이다. 욥기가 내게 확신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나의 즐거움보다 믿음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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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불공평에 대해 불만하지 말아라.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너는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하나님이 욥기에서처럼 우리의 고난보다 믿음에 더 관심을 보인다면 그러한 인생의 어그러짐이 있을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나는 내 스스로 분노의 복수를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자라고 있는가?
이 책 재미있다. 구약의 몇몇, 시편, 전도서, 예언서 등에 대해 여러가지 방면으로 해석과 쉽게 이야기를 풀어준다. 제목을 보았을 때는 '하나님, 나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류의 책으로 생각되었는데 그 보다는 구약을 풀어주는데 더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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