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제 1장 서기 211~218년>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도 통찰한 뒤에 생각하고 실시해야 한다. 깊은 통찰과 정반대되는 극에 있는 것이 얕은 생각이다. 카라칼라의 기동부대 상설화가 야만족의 침입을 불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야만족의 침입을 격화시킨 한 요인은 되었을 것이다.
- 왜냐하면 기동부대 자체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차지하였기 때문. 이러한 약점을 당연히 적국은 이용하지 않겠는가?
<제 2장 서기 218~235년>
인간은 사실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으면 믿어버린다.
상관의 소집명령을 무시한 행위는 충분히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일은 '이치'에만 맞는다고 이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현상으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에 즈음하여 드러나는 인간 심리는 되풀이된다. 따라서 인간 심리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력,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과 감수성,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과거에 성공했던 선례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는 가르쳐주고 있다. - 알렉산데르가 병사들의 항의에 대해 카이사르가 했던 방식대로 행했을 때...
<제2장 서기 270~284년>
실력 중시 노선이 정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실력주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동격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나한테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사려 분별이 요구되지만, 그런 합리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이른바 '귀골'에게 하층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비합리'이기 때문이다. 많은사람의 가슴에 더 순순히 들어오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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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는 성실한 타입의 황제였다. 나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옛 황제들의 정책도 열심히 본받으려했고.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가르침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데 그친 사람이었다.
알렉산데르가 가지고 있는 고지식함이 내게도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기인할 것일까 생각해보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인것을 발견했다. 그저 이전에 누군가 했던 것처럼, 상관이 지시한대로만 하면 단순/명쾌 편하다. 또한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으므로 문제가 생겼을때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 전임자, 상사의 책임이 된다.
내가 때때로 제발 생각 좀 하면서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가? 남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조곤 조곤 짚어가면서 교정하도록 또는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하지 않을까. 제발 눈 앞에 있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눈 앞에 있는 것을 기계적으로 또는 감정으로 처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후속 파장까지 고려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내가 하는 일이 1년, 5년 후 또는 후임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 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이 아니라 사람, 시민에 의해 왕위에 대한 정통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참으로 민주주의적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쉽게 다수 또는 소수에 의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은 경우는 쉽게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특히나 황제가 나약한 경우, 정국이 혼란한 시기에는 우후죽순으로 자신이 황제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국가나 보다 큰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면, 황제든, 국민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세상을 보면 악(惡)은 다수이며, 선은 희미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파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수인 '악'속에 있을지라도 국가는 유지되며 시민들은 밝은 햇살아래 살아가는 지금이 놀랍다는 생각도 잠시 든다.
어쨌든, 3세기의 로마를 보면 73년간 22명의 황제가 통치했고(평균 3년) 그들 대부분의 죽음은 암살 또는 살해이다. 그래서 13권에서 다룰 21년간의 통치를 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리고 기독교를 공인하고 30년간의 통치를 한 콘스탄티누스가 궁금하다.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 그래도 갈리아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을 회복하면서 적극적으로 야만족(고티족)을 격퇴한 아우렐리아누스 같은 인물도 있었고 그의 뜻을 이을 카루스 같은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만에 나온 그래도 괜찮은 황제들임에도 불구, 아우렐레아누스는 잘못으로 벌을 받을까 두려워한 병사의 계략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살해당하고, 카루스의 경우는 사막에서 싸울준비를 하며 야영하다 벼락 맞아 죽게된다. 국내외의 혼란에 더해 왜 확률이 낮은 일까지 로마의 황제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녕 이대로 쇠락과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