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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0일 월요일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 - 박효진

이 책은 저자의 크리스챤으로의 변환과정, 그리고 교도관으로서의 직업을 통해 죄수, 그리고 사형수들에게 미친 선한 영향력을 간증하고 있다.
처음에 그는 회심한 후에도 ‘그래도 죄수와 달리 나는 동등한 죄인이 아니다. 나는 그들보다는 더 가벼운 죄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은 밖의 세계에 있는 우리나 안에 갇혀 있는 죄수자들이나 같은 죄인이며 시한부 인생인 사형수라고 인정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시기, 살인,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등 21가지 죄목으로 동등하게 심판하지만(로마서 1장 29~32), 우리 인간이 각각의 죄목에 상대적인 등급을 매겨 사람을 심판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읽히는 책이고 내가 모르는 삶, 교도소에 대해 기술하였기 때문에 그런 점은 재밌었다. 죄수들의 이야기 하나하나 감동적인 스토리이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주님을 통해 위로받고 삶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구원 받는 모습엔 다행스런 맘이 들었다.
그러나 detail 한 부분이 떨어진다. 즉,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의 손가락질 받는 삶 ->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과의 만남 -> 회개/용서 -> 새로운 삶의 패턴이 각각의 인물에 반복된다. 좀 더 각각의 케이스에 대해 보여지는 그대로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또는 교훈들/또는 삶의 진리를 추출하도록 세밀하게 묘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사형을 앞둔 사형수들의 죽음앞에 나타나는 공포의 감정에 대해 왜 우리는 그러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게 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사형제도는 정말 필요한 것인가? 등과 같이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좀 더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책을 읽고/현상을 보고 추론하는 독자의 몫일지도 모른다.
또한, 여기서 묘사한 인물들의 감정선이 너무 단순하게 보인다. 인간이 어찌 그리 단순할 수 있단 말인가? 회심을 하고 나서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원래의 습성으로 돌아가는게 인간이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고통스런 과정이나 투쟁들은 없이 만사 해피엔딩이다. 사실, 그래서 좀 아쉽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는 이 말씀을 또 잊고 살았다. 나는 목적/목표가 틀린 것을 위해 그리 열심히 부지런을 떨며 살고 있다. 그리 피곤해하고 바쁘다고 하면서 주위를 돌보지 않는 것을 정당화했는데 실제로 그것이 나의 육신의 안락함을 위해서였다. 사실, 저자가 이덕진 집사를 안 보려고 했던 것이 충분히 이해간다. 나도 사무실에선 바쁘긴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렇게 살아가면서 나는 QT, 기도, 말씀 등에서 지속적으로 멀어져갔다. 그러한 것들이 나의 양심을 비추어서 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알지만, 육신의 안락함이란 목표에서 만연한 악 또는 내 안에 내재된 악에 대항해서 싸우라는 목표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 당장 실체적인 즐거움이 없잖은가. 그리고 나만 육체적으로 더 힘들것이지 않은가? 그것을 아멘이라고 순종하고 싶어하지 않고, 모른체 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적용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서, 이 책을 통해 정신없이 바쁜 이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나를 다시 remind 해준 점에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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